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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에고 란?

금정산인 정견(正見)_()_

 
  • 5.7 1. 몸체. 사람의 물질적 또는 물리적 유기조직체. 동물의 자연본성과 기원을 갖는 생명의 전기화학적 기능구조.
    00:05.8 2. 마음. 인간 유기조직체의 생각하고 지각하고 느끼는 기능구조. 모든 의식 그리고 무의식 체험 전체. 경배와 지혜를 통하여, 위로는 영 차원까지 이르는 감정적 생명과 연합된 지능.
    00:05.9 3. . 사람의 마음에 깃드는 신성한 영─생각조절자. 이 불멸의 영은, 비록 생존되는 필사 창조체 개인성의 일부분이 되도록 운명되었지만, 개인성이 아니고-전(前)개인적이다.
    00:05.1 4. . 사람의 혼은 체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필사 창조체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선택함에 따라, 그렇게 깃들어 있는 영은 인간 체험 안에서 새로운 실체의 아버지가 된다. 필사 이면서 그리고 물질적 마음은 바로 이 창발(創發)하는 실체의 어머니이다. 이 새로운 실체의 본질은 물질적인 것도 또한 영적인 것도 아니며─그것은 모론시아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필사자 죽음에서 살아남고 낙원천국 상승을 시작하도록 운명된 창발하는 불멸의 혼이다.
    00:05.1

    개인성(에고). 필사 사람의 개인성은 몸체도 마음도 영도 아니다; 그것은 혼 또한 아니다. 개인성은 모든 것이 항상-변하는 창조체 체험 속에 있는 유일하게 변함이 없는 실체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연합된 개별존재성의 요소들을 통합시킨다. 개인성은, 우주 아버지가 물질, 마음, 그리고 영의 살아있고 연합된 에너지들 위에 이룩하는, 그리고 모론시아 혼의 생존으로 살아남는, 독특한 증여물이다.

    00:05.1 모론시아는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있는 광대한 차원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것은 개인적 또는 미(未)개인적 실체들, 생명의 또는 비(非)생명의 에너지들을 가리킬 수 있다. 모론시아의 날줄은 영적이다; 한편 그 씨줄은 물리적이다

     

     

     

     

    00:06.8

    마음은 변화하는 에너지 체계에 부가되는 생명이 있는 사명활동의 현존-활동을 의미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지능 차원에 진실로 그러하다. 개인성 안에서 마음은 언제나 영과 물질 사이에 끼어있다; 그 결과 우주는 세 종류의 빛으로 밝게 비추어 진다; 물질적 빛, 지적 통찰력, 그리고 영(靈) 광채이다.

     

     

     

     

    01:03.1 하느님은 영이다.” 그는 한 우주의 영적 현존이다. 우주 아버지는 한 무한한 영적 실체이며; 그는 “주권자이며, 영원하고, 불멸적인, 불가시적인, 그리고 유일하게 참된 하느님이다. 비록 너희들이 “하느님의 자손”이라 하더라도, 너희가 “그의 형상에 따라”창조되었다고─그의 영원한 현존이 머무르는 중심으로부터 보내진 신비의 감시자가 내주된다고─불린다고 해서 형태와 모습에서 아버지가 너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 존재들은 비록 그들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살과 피를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01:03.2 옛 선지자는 “보라, 그가 내 옆에서 걸어가도 나는 그를 보지 못한다; 또한 그가 지나가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아마도 계속해서 하느님의 일들을 지켜보고, 그의 장엄한 행위에 대한 물질적 증거들에 대하여 고도로 의식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의 신성의 가시적 현시를 우리가 거의 보지 못하며, 심지어는 인간 속에 내주하는 파견된 그의 영의 현존을 쳐다볼 수도 없다.
    01:03.3 우주 아버지는 물질적 장애들과 제한된 영적 자질들을 가진 저급한 창조체들로부터 자신을 숨기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오히려 다음과 같다: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이는 어떠한 필사자도 나를 보고서는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물질적 어떤 사람도 영 하느님을 쳐다보고서는 그의 필사 실재를 보존할 수 없다. 신성한 개인성현존의 영광과 영적 광채는, 비교적 낮은 영 존재들의 집단이나 또는 어떤 계층의 물질적 개인성들도 접근할 수 없다. 아버지의 개인적 현존의 영적 광채는 “어떠한 필사 사람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어떤 물질적 창조체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빛이다.” 그러나 영성화(靈性化)된 마음의 신앙-시각으로 그를 식별하기 위해 육신 계층의 눈으로 하느님을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
    01:03.4 우주 아버지의 영 본성은 그의 공존하는 자아인 낙원천국영원 아들과 함께 충분히 공유된다. 아버지아들은 그들의 공동 개인성 합동자인 무한 영과 우주적이고도 영원한 영을 충만하게 그리고 남김없이 비슷한 방식으로 공유한다. 하느님의 영은, 자체적으로 그리고 저절로, 절대적이며; 아들 안에서 그것은 분별불가하며, 영 안에서 우주적이며, 그들 모두 안에서 그리고 그들 모두에 의하여 무한하다.
    01:03.5 하느님은 우주적인 영이며; 하느님은 조화우주 개인이다. 유한 창조의 최극 개인적 실체는 영이며; 개인적 조화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아(亞)절대 영이다. 오로지 무한 차원들만이 절대적이며, 그런 차원들에서만이 물질, 마음, 그리고 영 사이에 하나가 되는 최종이 있다.
    01:03.6 우주들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은 잠재적으로 물질, 마음, 영에 대한 총괄자이다. 하느님은 오직 그의 멀리-퍼지는 개인성 순환회로에 의해서만, 의지창조체들로 이루어진 그의 광대한 창조의 개인성들과 직접 관계를 맺지만, 그는 (낙원천국 밖에서는) 오직 그의 단편화된 실존개체들, 우주들 안에 널리 퍼진 하느님의 뜻으로만 접촉이 가능하다. 시간 속의 필사자들의 마음속에 깃들고, 그곳에서 살아남는 창조체의 불멸의 혼의 진화를 육성시키는 이 낙원천국 영은 우주 아버지의 본성이며 신성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화하는 창조체의 마음은, 지역우주들 안에서 기원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겠다는 창조체의 선택의 필연적 결과인 영적 달성이라는 그 체험적 변환을 성취함으로써 신성한 완전성을 얻어야만 한다.
    01:03.7 사람의 내적 체험 속에서, 마음은 물질과 결합되어 있다. 물질에-연관된 이러한 마음은 필사자의 죽음에서 생존할 수 없다. 생존의 기법은 인간 의지의 그러한 조절들 안에 그리고 그러한 하느님-의식 지성이 점차적으로 영의 가르침을 받고 결국에는 영의 인도를 받게 되는 필사자 마음 안에서의 그 변환들 속에 포옹되어 있다. 물질 연합으로부터 영 결합을 향한 인간 마음의 이 진화는 필사마음의 잠재적인 영 위상을 불멸의 혼인 모론시아 실체들로 변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질에 종속된 인간 마음은 점점 더 물질적으로 되는 운명에 있고 결국 생겨나는 개인성의 소멸을 당한다; 영에 종속되는 마음은 점점 더 영적으로 되는 운명에 있고, 궁극적으로 생존시키고 인도하는 신성한 영과 하나 됨을 성취하며, 이런 식으로 해서 개인성 실재의 생존과 영원을 달성하게 되어 있다.
    01:03.8 나는 영원자로부터 왔고, 우주 아버지가 현존하는 곳에 반복하여 되돌아갔었다. 나는 첫째근원이며 중심인 영원하고 우주적인 아버지의 실제성과 개인성에 대해 알고 있다. 나는 위대한 하느님이 절대이고 영원하며 그리고 무한하며 또한 그는 선하며 신성하며 그리고 자비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위대한 선언들의 진리를 알고 있다: “하느님은 영”이고 “하느님은 사랑”이며, 이 두 속성들은 영원 아들 안에서 우주에 가장 완벽하게 밝혀져 있다.

     

     
  • 잠재의식은,무의식이라고 하는데요, 과거생, 즉 전생의 모든 체험과 경험과 학습 등등 그 사람이 영원한 전생윤회(환생윤회)의 과정속의 모든 지혜의 총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본능은, 육체를 지닌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생명체의 기초적인 아주 행심적인, 신불의 자비입니다.


    에고 즉 자아라고도 하며, 이기심이라고도 하는, 자기본위,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본능과는 관계없는, 탐욕이라고 봅니다. 


    산이나 들이나 야유회나 기타 자기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 가서, 쓰레기를 함부러 마구 마구 버립니다.

    에고입니다.


    남에게 대? 배려나 환경이 파괴되건 말건, 마구 버립니다.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다, 아주 안좋은 욕망이라고 봅니다.


    에고는, 아트만이라는, 고대언어와는 다릅니다.